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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여행

[진도여행]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와 벽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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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李忠武公 碧波津 戰捷碑)

2001년 10월 30일 진도군의 향토문화유산(유형유산) 제5호로 지정

소재지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정유재란 당시 이충무공에 의해 가장 통쾌한 승리를 거둔 기념비인데요.

불가사의하게 거둔 명량해전 승첩을 기념하면서 진도출신 참전 순절자들을 기록하기 위해 1956년 11월 29일 건립되었습니다.

구조를 살펴보면 비신 높이 3.8m, 폭 1.2m, 두께 58cm이고요.

비문은 시인 이은상이 짓고 글씨는 진도 출신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썼다고 합니다.

 

2008년에는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내외분께서 오셔서 기념 식수를 심으셨네요.

이 비는 벽파리 앞동산 산마루에서 동쪽을 향해 서있습니다.

바위산을 이용하여 천연 거북좌대를 조상(彫像)함으로써 전첩비의 위용과 예술성을 격상시켯다고 하는데요.

진첩비 아래에는 벽파정이 있습니다.

벽파정 아래에 주차장이 있는데요.

차를 주차하고 벽파정으로 올라가는 길도 바위를 깍아서 만들어서 무게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참 멋진 정자인데요.

이것이 벽파정입니다.

 

앞에 보이는 섬은 감부도입니다.

더운 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 조용한 여행 다니시는 분들에게 좋은 곳입니다.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문

벽파진 푸른 바다여 너는 영광스런 역사를 가졌도다

민족의 성웅 충무공이 가장 외롭고 어려운 고비에

고작 빛나고 우뚝한 공을 세우신 곳이 여기더니라

옥에서 풀려나와 삼도수군통제사의 무거운 짐을 다시 지고서

병든 몸을 이글고 남은 배 심이척을 겨우 걷우어

일찍 군수로 임명되었던 진도 땅 벽파진에 이르니

때는 공이 오십삼세되던 정유년 팔월 이십구일 이때

조정에서는 공에게 육전을 명령했으나

공은 이에 대답하되

신에게 상기도 십이척의 전선이 남아 있삽고

또 신이 죽지 않았으매 적이 우리를 업수이 여기지 못하리이다.

하고 그대로 여기 이 바닷목을 지키셨나니

예서 머무신 십육일동안 사흘은 비 내리고

나흘은 바람불고 받아들 회와 함께

배위에 앉아 눈물도 지우셨고 구월초 칠일엔

적선 십삼척이 들어옴을 물리쳤으며

초구일에도 적선 이척이 감보도까지 들어와

우리를 엿살피다 쫒겨 갔는데

공은 다시 생각한 바 있어

십오일에 우수영으로 진을 옯기자

그 다음날 큰 싸움이 터져 십이척 적은 배로써

심벡삼십척의 적선을 모조리 무찌르니

어허 통쾌할 사만고에 길이 빛날 명량대첩이여

그날 진도 백성들은 모두들 달려나와

군사들에게 옷과 량식을 나누었으며

리천구 김수생 김성진 하수병 박헌 박희승 박희령 박후령과

그 아들 린복 또 량응지와 그 조카 계원

그리고 조탁 조응량과 그 아들 명신등

많은 의사들은 목숨까지 바치어 천추에 호국신이 되였었나니

이는 진실로 진도민의 자랑이로다.

이 고장 민속 감감술레 구슬픈 춤과 노래는

의병전술을 일러주는 양 가슴마다 눈물 어리고

녹진명양 두 언덕 철쇄 걸었던 깊은 자욱엔

옛 어른들의 전설이 고였거니와

이제 다시 이 곳 동포들이 공의 은공과 정기를

영세에 드높이고자 벽파진두에 한덩이 돌을 세움에

및여 나는 삼가 꿇어 엎디어 대강 그 때 사적을 적고

이어 노래를 붙이노니

열두척 남은 배을 걷우어 거느리고

벽파진 찾아들어 바닷목을 지키실제

그 심정 아는 이 없어 눈물 혼자 지우시다

삼백척 적의 배들 산같이 깔렸더니

울도목 센 물결에 거품같이 다 꺼지고

북소리 울리는 속에 저 님 우뚝 서 계시다

거룩한 님의 은공 어디다 비기오리

피 흘린 의사 혼백 어느적에 살아지리

이 바다 지나는 이들이 마숙이옵소서

단기 사천이백 팔십구년 팔월 이십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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