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끝을 스치는 찬 바람이 기분 좋은 겨울날, 저는 경남 함양으로 향했습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영남의 명승 중 으뜸"이라 칭송했던 화림동계곡,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공간인 '거연정'을 만나기 위해서였죠. 날씨는 추웠지만, 그 차가운 공기 속에 비친 정자의 모습은 오히려 조선 시대의 고고한 멋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거연정은 1640년 전시서 선생이 서산서원 곁에 처음 세운 곳입니다. 화재로 소실된 서원의 재목을 활용해 다시 지어졌다는 사연을 알고 나니, 정자의 기둥 하나하나가 더 예사롭지 않게 보입니다.

특히 놀라운 점은 '자연에 순응한 구조'입니다. 울퉁불퉁한 바위의 높낮이를 그대로 살려 기단의 높이를 조절했더군요. 인위적으로 땅을 깎지 않고 자연 위에 살며시 내려앉은 모습에서 우리 조상들의 겸손한 건축 철학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거연(居然)'이라는 이름은 주자의 시에서 유래했는데, "샘물과 바위 곁에 그대로 머문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거연정 앞에 서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바로 이해하게 됩니다. 남덕유산에서 내려온 남강 상류의 물줄기가 기암괴석 사이로 굽이치는데, 그 물소리가 마치 자연이 연주하는 악기 소리처럼 들립니다. 연암 박지원이 왜 이곳을 화림동의 최고 명승지로 꼽았는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대목입니다.


제가 방문한 겨울의 거연정은 고요함 그 자체였습니다. 계곡 돌 사이로 흐르는 물이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더라고요. 지금은 얼음 섞인 차가운 물줄기지만, 여름에 오면 이보다 더 시원한 낙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울 특유의 쓸쓸함마저 '조선 시대의 선비 정신'처럼 멋스럽게 승화되는 곳, 함양 여행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입니다.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겠지만, 단풍이 붉게 물든 가을의 반영이나 초록이 무성한 여름의 시원함도 기대되는 곳입니다. 함양에 방문하신다면 화림동계곡을 따라 거연정에서 잠시 선비가 되어 쉬어가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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