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인생에서 만난 시인들

반응형

꽃이 되어 새가 되어 / 나태주

지고 가기 힘겨운 슬픔 있거든
꽃들에게 맡기고
부리기도 버거운 아픔 있거든
새들에게 맡긴다
날마다 하루해는 사람들을 비껴서
강물 되어 저만큼 멀어지지만
들판 가득 꽃들은 피어서 붉고
하늘가로 스치는 새들도 본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 나태주

 

너,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조금쯤 모자라거나 비뚤어진 구석이 있다며
내일 다시 하거나 내일
다시 고쳐서 하면 된다
조그마한 성공도 성공이다
그만큼에서 그치거나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고
작은 성공을 슬퍼하거나
그것을 빌미 삼아 스스로를 나무라거나
힘들게 하지 말자는 말이다
나는 오늘도 많은 일들과 만났고
견딜 수 없는 일들까지 견뎠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셈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오히려 칭찬해 주고
보듬어 껴안아줄 일이다
오늘을 믿고 기대한 것처럼
내일을 또 믿고 기대하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너,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너의 하늘을 보아 / 박노해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너의 때가 온다 / 박노해

너는 작은 솔씨 하나지만
네 안에는 아름드리 금강송이 들어있다
너는 작은 도토리알이지만
네 안에는 우람한 참나무가 들어있다
너는 작은 보리 한줌이지만
네 안에는 푸른 보리밭이 숨 쉬고 있다
너는 지금 작지만
너는 이미 크다
너는 지금 모르지만
너의 때가 오고 있다


진정한 멋 / 박노해

사람만 자신만의
어떤 사치의 감각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위해
나머지를 기꺼이 포기하는 것
제대로 된 사치는  최고의 절약이고
최고의 자기 절제니까
사람은 자신만의 어떤 멋을 간직해야 한다
비할 데 없는 고유한 그 무엇을 위해
나머지를 과감히 비워내는 것
진정한 멋은 궁극의 자기 비움이고
인간 그 자신이 빛나는 것이니까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 / 정현종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그 어떤 때거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접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원시 / 오세영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곤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에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다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내가 나에게 / 이해인

오늘은 내가
나에게 칭찬도 하고
위로도 하며
같이 놀아주려 한다
순간마다 사랑하는 노력으로
수고 많이 했다고
웃어주고 싶다
계속 잘하라고
힘을 내라고
거울 앞에서
내가 나를 안아준다


어떤 결심 / 이해인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져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테니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A.S 푸시킨

삶이 비록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슬픔은 딛고 일어서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항상 미래를 지향하고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하염없이 사라지는 모든 것이여
한번 지나가 버리면 그리움으로 남는 것

 
산속에서 / 나희덕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저편 언덕 / 류시화

슬픔이 그대를 부를 때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라
세상의 어떤 것에도 의지할 수 없을 때
그 슬픔에 기대라
저편 언덕처럼
슬픔이 그대를 손짓할 때
그곳으로 걸어가라
세상의 어떤 의미에도 기댈 수 없을 때
저편 언덕으로 가서
그대 자신에게 기대라
슬픔에 의지하되
다만 슬픔의 소유가 되지 말라

반응형